티스토리 뷰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의 7-9장에서는 미디어와 인간에 대해 말한다. 7장에서는 현대 사람들에게 주요한 소통창구가 된 소셜 미디어가 인간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8장에서는 빅 데이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9장에서는 현실 세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가상현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7. 기계, 인간의 새로운 동반자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장소의 제약도 받지 않고 24시간 소통할 수 있는 통로들이 생겼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고, 민족, 언어, 그리고 국경을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나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고, 얼굴을 몰라도 많은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이러한 관계는 깊이가 없고 피상적이기 쉽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힘들다. 그래서 친구목록에 있는 친구 수가 얼마이든 간에 우리는 외로워지기 쉽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의 저자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에는 역사가 있다”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역사란 인간의 마음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음은 너무 넓은 개념이라 어떤 맥락에서 썼는가에 따라 이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조선시대를 살던 사람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표면의식은 전혀 같지 않겠지만, 본질적인 감정과 깊은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현대인들이 실체가 없는 것을 동경하거나, 혹은 그것이 있다고 믿으며 가짜를 추구하는 거짓된 욕망을 낭만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낭만적 거짓이라고 한다.
SNS에서 받는 ‘좋아요’ 숫자로 평가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한다고 생각할 때 그런 자신을 진짜 나라고 믿으며 타인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이 진정한 나 자신인지 아닌지 의심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인정받기 위해 표면적인 것에 집착한다. 정작 자기 내면은 버려둔 채 말이다.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것은 자기 존재를 더욱 외롭고 공허하게 만든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때가 오면, 타인의 인정을 얻으려고 애쓰며 살았던 나를 진정한 자신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과연 내 안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인지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진 이 시대에 우리는 애완동물들을 반려 동물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제 반려 로봇까지 등장했다. 반려 로봇은 사람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로봇이다. 애완동물과 마찬가지로 내 곁에 로봇이 있어 준다면 나는 혼자가 아니니 외롭지 않을 수 있겠지만, 서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 없는 로봇과의 관계가 얼마나 위안이 될지, 일방적인 관계가 되진 않을지 조심스럽다.
8. 일상에 깃든 빅데이터
빅데이터는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곳곳에 있는 CCTV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차곡차곡 정보를 쌓고 있고, 사물인터넷의 기기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우리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한다. 사물들끼리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반응하는 것은 생명체의 범주가 확장된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생명과 영혼이 있다는 고대의 철학적 관념이 사물인터넷 시대에 여전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 표현은 못 하지만 사물들 저마다 영혼이 있으며 보이지 않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인류의 업적이라 부르는 위대한 일들은 개인 몇 명이 이루어낼 수 없으며, 모두가 협력해서 이룰 수 있었다. 요즘 떠오르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 바로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다. 크라우드 소싱은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외부의 자원을 활용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비전문가인 대중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참여와 지식이 모여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현시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인터넷에서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만 아니라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하나의 데이터가 되어 이것들이 쌓이면 축적된 지식이 된다. 사소한 작은 정보 하나도 여러 개가 쌓이면 큰 정보가 되며, 더 많은 사람 또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분명 집단 지성이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지만, 데이터 중심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데이터를 믿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9. 확장된 현실세계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육안에 보이는 ‘현실’ 세계이다. 우리의 현실 세계는 진일보하여 가상현실로 폭을 넓혔다. 가상현실을 다루는 영화 <매트릭스>와 <트루먼쇼>는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에 대해, 그리고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영화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을 탈출하면 진짜 현실이 있다는 이분법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진짜 현실을 위해 매트릭스를 버렸지만, 결국 진짜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도 또 다른 매트릭스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트루먼쇼>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TV 리얼리티 쇼로 만들어 방송한다. 부모님, 친구, 그리고 아내까지 전부 다 배우들이고, 주인공인 트루먼 혼자만 자기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자기 삶이 조작되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영화 마지막에서 인상적인 퇴장을 한다. 촬영 세트장의 문을 열기 직전 트루먼이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모든 것이 트루먼을 중심으로 짜인 각본에 의해 지속되었던 삶을 멈추고, 그는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현실’로 발을 디뎠다. 현실로 들어온 그가 진정한 자기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낯선 현실로 떠난 것 자체가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설령 세트장에서의 연출된 삶보다 힘든 삶을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떠난 여정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의식이 가상현실로 옮겨가고 육체와 분리되어 의식 차원의 체험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의식이 육체를 떠나 가상공간 안에서 순수의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육체를 떠난 의식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육체가 있어야 의식은 감각을 느끼고 반응하며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체 없이 순수한 의식만으로는 경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신이 더 중요한가 육체가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정신과 육체 모두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가상의 몸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거나 방어하기도 하면서 직접 체득하기 때문이다. 현실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도 몸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을 읽는 시간- 두려움 (0) | 2024.08.24 |
---|---|
감정을 읽는 시간- 감정을 느낀다는 것 (0) | 2024.08.17 |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 2 (2) | 2024.08.03 |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 1 (0) | 2024.07.27 |
나의 수치심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3) | 2024.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