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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의 4-6장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미래시대에 떠오를 이슈들에 대해 다룬다. 특히 5장에서는 '과학기술로 인간의 도덕성도 향상시킬 수 있는가?'라는 놀라운 질문을 던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과 로봇을 도덕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찰한다.
4. 노동의 의미와 가치
인간의 생존에 있어 노동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기계와 로봇이 대신하는 것이 현실이 된 지금, 인간의 노동과 여가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기술이 더욱 발달할 미래에는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올 것이라 주장한다.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계가 노동하도록 하고, 그 시간에 자유롭게 다른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계발과 개인적인 가치 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요즘 자주 말하는 ‘워라밸’은 노동과 삶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고, 노동을 ‘하기 싫지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래서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구분하여 둘 사이의 균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급변하는 앞으로의 시대에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노동의 의미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행위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노동은 자기 능력을 찾고 실현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결속력을 갖게 한다. 노동의 가치는 자기 능력을 더 발전시키고,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삶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끌어내는 데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 또는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갈등도 겪지만,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키우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경험이 풍부해지고 숙련되어 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동은 단순히 소득을 위한 활동 그 이상이며, 우리 삶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고찰이 필요하다.
5. 과학기술 시대의 도덕성
해가 지나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산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과연 세상은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도덕성도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무척 생소하고, 놀랍기도 하다. 도덕성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으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도덕적 능력 향상’은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과 같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인위적으로 향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천 철학자 잉마 페르손과 응용윤리학자 줄리안 사블레스쿠는 자신들의 저서 「미래 사회를 위한 준비: 도덕적 생명 향상(2015)」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인간 도덕성은 과학기술에 의해 향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문제, 사회문제, 그리고 교육과 사회화를 통한 도덕적 개선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지만, 생명공학과 유전공학 같은 기술은 신속하고 확실하게 도덕적 능력이 향상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현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것이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고 볼 수 없다. 개개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고, 기술에 의존한다면 인류는 전에 없던 새로운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로봇 3원칙은 핵심 주제 중의 하나다. 이 작품에서 로봇공학 전문가인 레닝 박사는 로봇이 자유의지를 가질 것이 두려워 로봇 3원칙*을 만들었으나, 반대로 킬러로봇이 인간을 해치는데 이 원칙들을 역으로 사용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인간 고유의 도덕성 향상을 이끌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 과학기술의 노예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 로봇 3원칙
SF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는 「위험에 빠진 로봇」이라는 소설에서 처음으로 로봇 3원칙을 언급했다. 물론 공상과학소설에서 언급한 것이라는 점에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오늘날의 로봇 윤리의 기초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0원칙: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인류를 위험한 상황에 방치해서도 안 된다.(작가는 인간을 보호하기에 로봇 3원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고 먼저 지켜야 할 제0조를 추가 발표함.)
1원칙: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도,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2원칙: 로봇은 첫 번째 원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원칙: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에 상충하지 않는 한 스스로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삶을 선물로 바라보는 자세”를 제안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우리는 도덕성 향상의 문제를 개인적인 가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 등을 통한 도덕성 향상은 내가 가진 것, 내 재능이나 능력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라 믿게 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만든다. 내 삶을 선물로 보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보게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세상은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람 아닌 존재들과도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과학기술에 도덕성 향상을 맡길 정도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없다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사회 전반에 걸쳐 로봇들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현시대에 로봇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윤리학자인 웬델 델러치와 인지과학자인 콜린 알렌은 궁극적으로 “인공적 도덕 행위자의 개발이 사람들이 걱정하는 인공지능의 도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의 윤리관을 구현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인간의 윤리적 성찰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로봇은 인간의 윤리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6. 새로운 인간관의 등장: 포스트휴먼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자기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은 작게는 인형, 복제 인간,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플라톤에 따르면, 동물들보다 열등하고 부족한 인간이 생명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선사한 불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이 기술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은 얻었으나, 이것은 불완전한 앎이기에 공동체적 지혜를 갖출 때 비로소 완벽한 앎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던 문학평론가인 캐서린 헤일스는 자신의 저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에서 포스트휴먼 개념을 소개한다. 헤일스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은 “이질적인 구성요소들의 집합물이고 물질 정보의 총체로서 이것의 경계는 계속 구성되고 재구성된다.” 미래의 인간은 반드시 우리처럼 피와 살을 가진 순수한 인간이 아니며, 기계-인간일 필요도 없다. 미래의 인간이나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창조물은 기계-인간에서 벗어난 새로운 종일 수 있으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전통적인 인간관은 해체되고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가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및 과학 역사가인 도나 해러웨이는 ‘동반종들(Companion Species)’이라는 개념을 통해 여러 종의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자고 말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자연과 문화, 인간과 기계,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도 불확실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비(非)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러 생물종이 서로 맺는 관계는 언제든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 지구를 구성하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 모두 ‘친족’이 되어 함께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전선을 이루어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더 이상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가 아니다. 실험실용 동물들이 사용 목적이 다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도구 또는 상품으로 여겨져 왔듯이 인간 역시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와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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