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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케이시의 <삶의 열 가지 해답> 중 일곱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본다.
7. 죄의식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도할 수 있는 한 걱정하지 말라
케이시는 근심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기도라고 했다. 걱정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이 명령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는 한 걱정하지 마라. 당신이 기도할 수 없게 되면, 그때는 걱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걱정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회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져? 과연 기도가 현실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나?" 이에 대한 케이시의 대답을 찾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우리 역할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전일적(Holistic) 치유
인간의 육체라는 한 부분만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간의 전 영역-육체적, 정신적, 영적 측면-이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걱정, 죄의식이나 두려움과 같은 정신적 태도를 치유하는 것은 분명 정신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치유가 완전하고 지속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육체적 활동과 영성까지 치유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누구인가에 관한 완전한 상(像)을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신은 누구인가?
영혼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자유 의지와 창조적 사고라는 신성한 선물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주의 창조주가 지닌 것과 동일한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는 창조력 또는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창조력 또는 신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모든 창조물들 중 오직 인간만이 신의 의지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자유 의지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산의 의지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을 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 대가는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불행이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리 자신이 신의 일부이며 신의 불꽃이기 때문에 우리가 내부의 창조력과 조화롭게 행동하지 못할 때 저절로 내면에 불화가 생겨난다. 케이시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죄의식과 두려움의 진정한 근본원인이다.
삶의 배후에 있는 법칙은 인과의 법칙이다. 성서에서는 이 법칙을 "뿌린 대로 거두기"라고 했으며, 동양의 종교에서는 이것을 "카르마"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이것들 모두가 다 같은 것들이다. 서양과 동양의 종교들은 우리가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진정한 영적 본질은 이기심이 없고 신처럼 조건 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이런 비이기적인 충동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한다면 자연히 두려움과 죄의식이 생겨난다. 그래서 케이시는 우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존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봉사한다면 필연적으로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죄의식(죄책감)을 극복하는 방법들
죄의식을 치유하는 네 가지 열쇠는 다음과 같다.
1. 자책감은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선입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일정 시점까지의 개인의 경험을 통해 판단한다. 그러나, 케이시는 우리가 노력을 계속하는 한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노력을 그만둘 때에만 실패한다는 것이다.
2. 타인을 비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자기 비난을 이끌어낸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에 대한 타인의 태도를 결정한다. 만일 우리가 타인을 비난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감정과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향한다.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창조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다.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기 할 일을 충실하게 해 나가면 된다.
3. 행동한다.
자책감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않는데서 오는 결과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자책감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책감은 게으름의 결과이다. 그러나, 게으름이 평온한 길이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만 대며 행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신의 의지가 우리를 통해 발현될 수 없다.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겠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믿음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최악은 믿음에 따라 살 의지가 없으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만 하는 것이다.
4. 창조주의 용서를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심판하는 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용서라는 것을 믿지 않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케이시는 신은 사랑을 베풀고 용서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용서하는 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신의 은총이라는 선물을 체험하게 된다. 일단 우리가 은총을 경험하게 되면, 그 은총은 우리를 자극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은총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한다. 이렇게 우리 자신이 타인에게 신의 은총과 축복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면, 두려움과 죄의식은 사라지고 우리는 우리의 실체를 자각하게 되고,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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