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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의 초기 저술들이 과학적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다면, 「공기와 꿈」은 질료와 운동에 관한 상상력 연구를 거쳐 문학적 상상력 연구로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저작이다. 그가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의 운동과 우주관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하고 있다. 고대 우주 발생론의 4원소 중 하나인 공기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어떻게 새롭고 다양하게 수용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형태나 물질에 관한 상상력보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역동성이 주를 이루는 공기의 특질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 속 상상력에 접근하는 이 작품은 초기의 물질적 상상력 연구에서 역동적 상상력 연구를 거쳐 이후 그가 주로 다루게 될 상상력의 현상이론을 위한 기초를 다진다.
공기와 꿈
서론
상상력과 가동성
시란 본질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에 대한 갈망이다. 새로움에 대한 원소적 요구와 일치한다. 기존 상상력의 심리학에 희생되어 버린 상상력의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이미지의 가동성이다. 형태묘사가 정신의 묘사보다 쉽기에 심리학이 우선적으로 이미지 형태와 구성에 대해 연구하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미지의 가동성이다.
언어의 생명력이 깃든 이미지들은 백과사전 속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이미지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상투적인 이미지들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을 상실했다. 생생한 언어를 담고 있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정서에 희망을 주고, 더 나은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결단에 힘을 주며, 우리의 신체적 삶까지도 활기를 북돋워준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책은 우리에게 있어서 내면의 영혼까지도 바꿔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표현될 때 사유는 풍요로워지는 동시에 언어 또한 풍요롭게 한다. 그리하여 존재가 곧 언어가 된다. 언어는 인간 정신 심리의 직접적인 생성이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사물들의 통념적 인식에서 벗어난다. 지각하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서로 정반대 되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은 곧 여기에 없어 부재하는 것이며, 새로운 삶을 향해 비약하는 것이다.
독일어권의 유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많은 도시와 사람들, 또 사물들을 보아야 하며, 동물들을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 어떤 몸짓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관조된 각각의 대상과 불려진 대상 각각의 이름은 꿈의 출발점이며, 언어의 창조적 운동이다.
해부학적 관찰 대상인 가시적인 차원보다 더 내적인 영역을 파악해 내는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상상력은 4원소의 법칙을 필연적으로 따르고 있다. 바슐라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상력의 해부학이 아니라 상상력의 생리학이라 불러야 할 성질의 것이다. 최초의 4가지 근본적인 원소들은 상호 연계를 유도하는 중심 이미지가 있다. 하나의 물질적 원소는 상상하는 정신 심리에 지속성을 제공하는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결국 물질적 상상력에 의해 수용된 모든 원소는 역동적 상상력을 위하여 승화와 초월을 준비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기적 이미지들의 삶 즉 생명력을 추적함으로써 그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공기적 승화야말로 그 단계들이 가장 명확하고 규칙적인 논증적 승화라는 것이다. 공중을 나는 존재는 자신이 날아다니는 대기를 넘어서는 듯이 보이지만, 공기를 초월하는 에테르(éther)*는 항상 거기 있는 것이다. (*에테르는 하늘에 가득 찬 맑고 깨끗한 정기로서 고대인들은 이것을 일반적인 공기의 초월적인 것으로 여겼다.)
상상력 속에서 공기라는 말과 가장 가까운 부가 형용사는 자유로운이라는 형용사이다. 자연스러운 공기는 자유로운 공기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유로운 공기와 자유롭게 하는 공기적 운동이 주는 교훈들을 성급하게 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의 깊고 신중하게 공기와 관련된 심리학을 고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공기는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빈약하기 때문에 물질적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공기에 대한 고찰은 짧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공기 덕분에 운동이 있어야 질료도 있게 된다. 공기적 정신 심리는 우리로 하여금 승화의 여러 단계를 잘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승화에 대해 더 논하기 전에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운동역학(La dynamique)은 역학의 한 부분으로서 물리학적이며 실제적인 운동의 모든 속성을 고찰하며 특히 운동 중인 물체와 힘이 어떤 관련을 갖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바슐라르는 이 책에서 dynamique를 형용사로 써서 cinematique와 구분한다. 형용사 dynamique를 '역동론적'으로, cinematique를 '기계론적 운동'으로 번역할 것이다. 전자는 지속적 운동에, 후자는 단계적 운동에 상응한다.
공기적 현상들은 오르기와 상승과 승화에 관한 일반적이면서도 중요한 교훈들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러한 교훈들은 우리가 기꺼이 상승의 심리학이라 부를 근본적 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동적 상상력을 통해 공기적 현상에 공감함으로써 경쾌함과 가벼움을 느끼는 것과 정비례로 이미지들의 가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느끼게 될 것이다. 상승의 삶은 내밀한 실재이며, 어떤 실재적 수직성이 정신 심리 현상들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수직성은 질서 원리이자 법칙이며, 그것을 따라 독특한 감수성의 여러 단계를 체험하게 되는 일종의 사다리이다. 궁극적으로 영혼의 삶, 섬세하고도 억제된 모든 감동, 모든 희망, 모든 의념, 미래를 시작하는 모든 정신 도덕적 힘은 전적으로 수학적 의미에서 수직적 미분을 보인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높은 곳을 향한 여행을 통해서이다. 수직성이 가지는 긍정적 역동성은 너무도 확실해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추락한다'는 문구를 만들어낼 정도이다.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라면 수평적으로 살 수는 없다. 인간의 휴식과 잠도 대부분의 경우 추락이라 할 수 있다. 올라가면서 잠자는 사람은 없다.
4원소는 이미지들을 활동하게 만들고, 형태들 속에 흩어져 있는 실재적인 것을 내면적으로 동화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4원소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규칙적 특성들을 부여할 수 있는 상상력의 종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상상의 공기는 우리를 정신 심리적으로 자라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미지들이 지닌 오르기 가능성에 의하여 이미지들을 측정하고 가늠하고자 한다.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최소한의 상승을 바로 말들 자체에 결부시키고자 시도한다. 상상력은 정녕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이론화하고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별한 이미지들이 가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힘에 대해 성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겠다.
역동적 상상력이라는 문제에 무게 인자가 반드시 개입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과제이다.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정신 심리의 무게를 측정함으로써 그야말로 모든 말 또는 단어*의 무게를 측정할 필요성을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높은 곳을 향한 추진력에 관한 상세한 심리학에는 특정한 증폭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신 심리의 진정한 증폭 장치를 인식하고 설치하는 임무는 바로 형이상학적 심리학자의 소관이다.
(* 여기서의 모든 말 또는 단어는 사회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언어 체계인 langue와 대조적인 것으로, 개인적 측면에서의 언어라는 의미로 사용됨)
이미지는 '상상하다'라는 동사의 주어이며, 목적 보어가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도약을 통해 우리 안에서 상상한다. 세계는 인간의 몽상 속에서 스스로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