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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치유자이자 영능력자로 알려진 에드가 케이시의 <삶의 열 가지 해답>의 주요 내용들을 요약해보고자 한다. 대학에서 배울법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이나 거리에 있는 사람들 누구나 알고 싶어 할 근본적이고 중요한 10가지 의문들에 대한 답이다. 이에 앞서 에드가 케이시가 어떠한 사람이었나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다.
에드가 케이시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에드가 케이시는 1877년 3월 18일 미국 켄터키주 홉킨스빌 지역의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 레슬리 B. 케이시와 캐리 케이시는 장로파 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다. 에드가 케이시는 5남매 중 첫째였고, 어린 나이에 성서에 대한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성서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나중에 커서는 성서를 즐겨 읽었다. 애드가 케이시의 전 생애동안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바로 성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 정기적으로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다. 성서를 읽는 것을 사랑한 것을 제외하면, 학생으로서의 그는 학구파는 아니었다. 학교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고, 책을 읽거나 외우라는 선생님의 지적을 들을 때에도 자기 자신만의 깊은 생각에 빠져 있곤 했다.
에드가 케이시의 어린 시절은 다른 소년들처럼 단순하고 평범했다. 그러나 가끔씩 그의 비범한 면모가 드러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그는 4살 때 사고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닐 만큼 컸을 때는 교과서를 베고 자면 그 내용이 저절로 암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좀 더 성장했을 때는 숲에서 한 여성이 나타나 그의 기도가 응답받으리라고 말하는 환영을 보았다. 그의 소원은 그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아픈 아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능력이 치유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공을 맞고 난 이후였다. 머리에 공을 맞은 충격으로 그는 하루종일 이상하게 행동했고,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그가 나을지 알려주었다. 부모가 그의 말대로 해준 다음 날 그는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공을 맞고 난 이후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2살이 되던 해에 홉킨스빌로 이사했고, 그곳 서점에서 일자리를 구해 일하던 중 미래의 아내가 될 거트루드 에반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구두 판매원, 보험 영업사원, 사진관, 그리고 서점 등에서 일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일했다.
그가 23살이 되는 생일 직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가 일 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는 쉰 듯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병원 치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실마리가 나타났다. 통신교육으로 최면 치료와 정골요법을 배운 알레인이라는 사람이 자기 최면상태로 케이시를 유도하면서 문제의 돌파구가 생겼다. 자기 최면상태에 들어간 케이시가 정상적인 목소리로 자기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말했다. 해결책은 어떤 암시를 걸면 문제가 사라진다고 했다. 알레인은 그의 말대로 암시를 걸었고, 이후 최면에서 깨어난 에드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는 최면상태에서 자신이 한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에드가가 자신의 문제를 고친 것을 보고, 알레인은 자신의 건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자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 리딩을 해보았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파트너가 되었다. 에드가 케이시는 환자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말하고, 알레인은 케이시의 해결방법을 기록하고 치료를 감독했다. 하지만, 에드가 케이시는 이런 식의 치료에 대해 무척 걱정했고 소극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의학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며, 이러한 지식이 어디에서 오는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말한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걱정했다. 누군가 자신의 리딩을 따르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바로 즉시 리딩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알레인의 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둘째, 케이시 자신보다는 알레인은 통신교육을 통해 더 많은 의학 지식이 있어 혹여 리딩에서 건강에 위험이 되는 정보가 나온다면 그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셋째는 그가 리딩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창기 시절 내내 알레인이 최면 인도자의 역할과 리딩 기록자의 역할을 도맡아 했다. 몇 년 후에는 케이시의 아버지와 케이시의 아내 거트루드가 이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는 리딩을 기록하는 전문 속기사를 따로 채용했다.
1903년 26살이 되던 해에 그는 거트루드와 결혼했고 이후 세 아이를 낳았다. 그는 자신이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으나, 그의 이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에게 리딩을 받은 고객들 중 의사였던 사람이 자신의 보고서에 케이시의 리딩에 대한 글을 썼고, 이것이 신문기사로까지 나가게 되어 그는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리딩을 이용하려는 것을 거부했고,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의 리딩이 최면상태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의사들이 그의 리딩을 믿지 않고 해결법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딩의 내용대로 치료해 줄 의사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처음에는 건강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리딩은 점차 범위가 확장되어갔다. 정신적 문제에 관한 리딩과 이후에는 예언적인 내용까지 추가되었고, 가장 획기적인 것은 환생에 관한 정보가 나타났을 때였다. 그는 환생이 정통 기독교 교리와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해 크리스찬으로서 무척 회의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환생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리딩이 시작되었다. 의뢰자의 전생을 살펴보고, 그 전생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려주는 리딩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리딩은 라이프 리딩(Life Reading)이라 알려졌다.
케이시의 리딩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 모튼 블루멘탈이라는 성공한 증권 중개인이 있었는데, 그는 케이시로부터 아주 긴 라이프 리딩과 철학적 통찰을 받았다. 1925년 그는 케이시 가족이 버지니아 주로 이사하도록 자금을 지원했고, 케이시의 메디컬 리딩이 환자 치료에 직접 응용될 수 있도록 병원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돈을 조달했다. 이 병원은 1928년 11월 11일에 완공되었고, 다음 날부터 환자를 받았다. 이뿐 아니라 케이시의 영적 능력을 연구하고, 개인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고도의 영적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기 위한 대학까지 세웠다. 그러나, 대공황 시기가 겹치면서 블루멘탈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고, 결국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다. 병원은 1932년 2월에 문을 닫았다.
(참고: 비영리단체 A.R.E는 1956년 이 병원 건물을 다시 샀고, 2014년 개조하여 현재 A.R.E.Health Care and Spa 센터로서 카이로프락틱 치료, 마사지, 하이드로테라피 등의 치료를 위한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픈 사람들을 돕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케이시에게는 이 일이 큰 타격이었으나 그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던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리딩이 새로운 기구를 만들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를 물었고, 그 대답은 확신에 찬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모든 리딩 기록과 자료를 보관하고 영적 능력을 연구하는 기관인 연구계몽협회(A.R.E, Association for Research and Enlightenment)가 설립되었다. (현재 이 단체는 케이시의 손자인 찰스 토마스 케이시가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케이시의 영적 능력을 조사하고, 이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리딩요청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당시 케이시는 하루 두 건의 리딩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데 보냈다. 저녁에는 아내와 쉬면서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라디오를 들었다.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1943년 에드가 케이시의 자서전 <저기 강이 있네(There Is a River)>가 출간되고 나자 양상이 급속도로 달라졌다. 리딩 요청 건수가 많을 때는 하루에 1,500건이 될 정도록 밀려들었고, 에드가와 가족들은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전념했다. 케이시는 자주 밤 10시가 넘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일을 줄여야 한다는 리딩까지 나왔지만, 그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944년 8월 과로로 인해 쓰러졌고, 아내와 함께 휴양시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잠시 건강을 회복하는 듯했다. 그의 마지막 리딩은 1944년 9월에 이루어졌고, 그는 계속 리딩하길 바라면서도 곧 그의 모든 근심걱정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주일 후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이후 11월 그는 버지니아 비치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왔고, 1945년 1월 3일 폐수종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부활절 날 아침 아내 거트루드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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