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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현대 과학의 영역에서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 온 문성호 님의 책 <물질의 궁극원자 아누>의 흥미로운 내용들을 정리할 계획이다. 

 

1. 연금술의 죽음

현자의 돌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아랍, 중세유럽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 등에서도 행해졌는데, 놀랍게도 그 시대적 지리적  차이를 넘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연금술의 과정을 통해 모든 금속의 부모인 유황과 수은이 결합하여 이른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 현자의 돌은 붉거나 흰 가루로, 기저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만병통치약, 영생의 불사약이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금술사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금이 아니라 바로 이 현자의 돌이었다. 

 

일반 화학상식에 따르면 유황과 수은이 만나 화학결합을 했을 때 얻어지는 건 황화수은(주사)이다. 물론 이것은 현자의 돌이 될 수 없다. 사실상 연금술사들의 수은과 유황은 통속적인 의미의 유황과 수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또는 이상적인 유황과 수은을 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금술사들은 고도의 상징과 그들만이 알아볼수 있는 비밀언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것을 비유적으로 녹색언어 또는 새들의 말이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사람들은 연금술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온갖 이상하고 해괴한 그림들만 발견했다. 예를 들어, 유황은 왕이나 태양으로, 수은은 왕비나 달 또는 사자로 상징되었다. 유황과 수은의 결합은 왕과 왕비가 성적 결합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토막 난 시체는 산화과정을, 손발이 잘린 섬뜩한 그림은 금속 원소의 응결과 응고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연금술사들이 자연을 바라본 관점과 관련이 깊은데, 그들은 금속과 광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나이들어 죽는, 영혼과 감정을 가진 일종의 생명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들에게 화학반응은 금속과 여러 물질 간의 생기론적인 상호작용으로 보였고, 이 때문에 연금술 작업은 종종 농사를 짓는다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비유되곤 했다. 

 

영적인 연금술

연금술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고, 부귀와 영생의 꿈을 안고 연금술의 용광로로 뛰어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실패하였고, 게다가 사기행위도 자주 일어났다. 의욕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높은 실패 확률 때문에 영적인 의미로만 연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연금술에 성공한 사람이 절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4세기 니콜라스 플라멜은 프랑스의 가난한 서기였는데, 아브라함의 책을 우연히 얻게 된 후 우여곡절 끝에 그 비밀을 해독해 냈고, 아내 페레넬과 함께 금속 변성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자선사업을 하면서 14개의 병원과 3개의 예배당, 그리고 7개의 교회를 후세에 남길 만큼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수많은 실패와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에메랄드 타블렛이나 연금술에 대한 전설들은 연금술이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간직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근대과학의 정립과 함께 그 운명을 다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과학혁명과 원자론

연금술을 뜻하는 단어 알키미(Alchemy)는 아랍어 Al-Khemi에서 온 것이다. Al-Khemi는 관사 Al과 명사 Khemi로 이루어졌고, Khem은 콥트어로 이집트를 뜻한다. 나일강 양변에 형성된 검은색 흙을 나타내는 말인 켐(Kheme)은 이집트를 뜻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된 단어였다. 따라서 Al-Khemi란 이집트의 과학을 뜻하며, 이는 연금술의 기원이 이집트에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화학, 즉 케미스트리( Chemistry)라는 용어가 연금술(Alchemy)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금술사들이 온갖 기저물질들을 가열하고, 용해하고, 증류하고 석출하는 과정에서 비록 그들이 원하던 현자의 돌을 얻지는 못했지만, 대신이 다른 유용한 것들을 얻었다. 알코올, 에테르, 아세트산, 질산, 황산, 백반, 염화암모늄, 질산은, 비누, 알칼리 등의 화학약품과 도가니, 증류기, 플라스크, 여과기 등의 실험기구는 근대화학의 기초를 열게 해 준 연금술의 부산물들이었다. 

 

유기적이며 질적인 연금술사들의 세계관이 정량적이며 기계적인 세계관으로 대체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원자론의 성공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원자론이 확립된 이론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화학에서 기계론적 화학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 로버트 보일(1627~1691)이었다. 화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보일은 원자론에 바탕을 두고 원소관을 설립하여, 근대화학에 원자론을 도입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보일은 아리스토텔리스의 4원소설과 파라켈수스의 3원소설을 부정하고, 대신 원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그는 "원소란 근원적이고 단순한 어떤 물질, 혹은 다른 어떤 것과도 전혀 섞이지 않은 물질이다. 물체는 다른 어떤 물질로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들 원소가 혼합된 복합체이며, 결국에는 이 성분들로 분해된다."라고 하였다. 어떤 물질이 몇 개의 물질로 다시 분해되는 것은 참된 원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같은 기계론적 철학의 영향으로 연금술은 마침내 실험화학과 영적인 부분으로 분리되고, 화학에서 신비적인 요소는 점차 배제되었다. 

 

과학혁명이라는 인간 지성의 크나큰 승리 앞에서 유서 깊은 연금술의 역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물질의 변성과 원소의 변환을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금술은 유물론에 물들지 않고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영적인 의미로만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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