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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의 8장에서는 진정한 앎의 의미와 의식 수준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깨달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를 권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살라고 강조한다. 

 

제8장 깨달음을 향하여

배움이 많은 영혼일수록 의식 수준이 높다

진정한 앎이란 삶에서의 체험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앎의 크기나 의식 수준은 우리가 윤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현재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타고난 의식 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높은 의식 수준을 타고난 사람도 사는 동안 비교적 낮은 에너지 수준에 머물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보통 이상의 의식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초능력이나 영능력 자체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의식 수준과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깨달은 사람들이나 그에 근접한 사람들에게 흔히 초능력이 나타나지만, 반대로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의식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귀신의 에너지와 소통할 수 있는 영매들의 의식 수준은 천차만별이어서 영매들 모두가 의식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의식 수준은 낮더라도 여러 생을 통해 영적인 능력을 계발시키고 발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은 비슷한 의식수준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일을 보고 비슷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되고 쉽게 친해지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서로 의식 수준이 다를 경우,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듣는 사람에게 100% 전달될 수 없어서 서로 답답함을 느낄 수 있고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고정관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해라'와 '하지 마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고, 이러한 말은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는다. 고정관념의 상당수는 부모, 선생님이나 성직자 등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회에 잘 순응하고 적응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주입시켜 왔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대부분 우주적인 가치에 부합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 제도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 교리의 해석까지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시대, 장소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관념은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 종교, 그리고 임신중절에 대한 고정관념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어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들은 대부분 우리가 진정한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별심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가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별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더 이상 내가 옳고 남은 틀렸다든지, 나는 못나고 남은 잘 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다른 종교를 믿는다거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배척하지 않게 된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벗어날 때 우리는 고통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고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깨달음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다

우리의 의식과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수행공부, 생활공부, 그리고 공적(公的)공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수행은 우리 몸을 정화시키고 경혈을 열어서 우주의 본성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수련을 통한 이러한 앎은 생활 속에서 몸으로 경험할 때 진정한 앎이 되어 의식을 성장시킨다. 예를 들어 명상에 깊이 빠져 우아일체(宇我一體)를 경험했다고 해도, 이러한 경험은 그가 가진 분별심과 집착을 바로 없애주지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야 한다. 두뇌가 아닌 에너지체가 가진 정보를 바꾸기 위해서는 몸을 통한 체험인 생활 공부가 필수적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굴이라도 파서 혼자서 생활한다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현실 속에서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영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적 공부도 필요한데, 공적 공부란 우리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으로 남을 위해 일함으로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우주의 본성이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스스로 그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순간에 머물기

많은 사람들이 지금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 여기서 미래에 산다는 것은 미래를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비한다기보다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부질없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지금의 시간을 허비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들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떨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무를 수 있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독일 출신 작가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가 쓴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라(The Power of Now)」에 따르면,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것이고 현재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창조물로서 기억이나 기대의 결과물일 뿐이다.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현재뿐이기에 의미있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에 머무르는 삶,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우리 마음은 여전히 과거나 미래에 머물러 있어 이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 현재에 머물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앎이 필요하다. 명상을 통해 우리 생각이 멈추게 되면 나 자신을 우주와 분리시키던 마음의 외피가 걷히고 우주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게 되면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명상은 바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만가지 상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아무런 상념 없이 1분, 아니 30초를 보내기도 쉽지 않다. 현재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은 명상을 하는 동안 잡념을 없애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기억과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부터 해방되면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 머물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도 상념 때문에 괴롭지 않게 되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멈추고 육체를 나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의 본성과 연결될 수 있고, 에너지가 정화된다.

 

현재에 머무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것에 몰두하며 사는 것이다. 자기 일에 집중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은 에너지가 활발히 돌기 때문에 바빠도 오히려 더 힘이 나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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