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감정을 읽는 시간」의 4장에서는 혐오감에 대해 알아본다. 혐오감을 연구한다는 것은 혐오감에 민감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는 자세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 연구는 오랫동안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역겨운 행동을 신체의 구토 유발감보다 더욱 혐오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흥미로운 점은 냄새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군사무기인 폭탄도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혐오감과 수치심을 비교한 내용도 살펴보시기 바란다.
Chapter 4. 혐오감: 옳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
나는 도덕적이다, 고로 역겹다
4장에서는 미국의 심리학자들을 놀라게 한 실험이 소개되었다. 이 실험에서 학자들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이야기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 학교를 대표해서 시의회에 참석해 바람직한 대화 문화의 정착을 주장한 고등학생이었다.
이야기 속에 역겨움을 유발하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은 경우 참가자들은 그 학생의 행동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역겨움을 유발하는 단어가 등장한 경우 많은 참가자들이 갑자기 학생의 태도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들은 무엇이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한 참가자는 불쾌함이 든 이유가 자신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라고 답했고, 다른 학생은 이야기 속 학생이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못됐다"라고 말한 참가자도 있었다.
무의식에 뿌리내린 이런 감정의 힘은 합리적인 판단을 이길 정도로 강력하다. 어떤 상황을 도덕적으로 평가할 때는 직관만 따라서도 안 되며, 겉모습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맛은 어떻게 감정이 되었나
혐오감 연구는 애초에 맛의 문제로 시작했다. '뒷맛이 쓰다' 같은 표현은 맛과 감각기관의 연관성을 내포한다. 혐오감을 다루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감정 연구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었다.
역겨움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입구인 입을 지킨다. 특히 임산부에게 있어 과도한 역겨움은 일종의 보호막이다. 임신 초기에는 면역 시스템이 약해지기 때문에 태야가 특정한 물질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역겨움은 뇌의 섬엽(Insula)이 담당한다. 이 부위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구역질이 일어나고 불쾌한 맛을 느낀다. 편도체 역시 역겨움에 관여한다. 편도체는 과거의 경험이나 현재의 자극을 근거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감정을 통제하고 평가하는 안와전두피질을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역겨움이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장 격렬한 구토 유발 요인이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사실을 볼 때 이 감정이 유전적 소인이라는 주장은 신뢰할 만하다. 벌어진 상처, 배설물, 시신, 썩은 음식, 쥐나 구더기 같은 특정 대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질병이나 부패에 대한 혐오감이 구토의 가장 큰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에 더해서 동물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 역시 혐오감을 유발한다.
구역질나는 것에는 구역질을 해라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가장 강력한 혐오유발 요인이 무엇인지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이 가장 많이 답한 항목은 바로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행동이었다. 둘째는 아동과의 성행위 같은 성적 금기를 깨는 행위였고, 세 번째는 이미 구더기가 끓기 시작한 시신을 발견했을 때처럼 신체적인 역겨움이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을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이나 신체의 부패같은 구역감 유발 요인보다 더 혐오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혐오감은 혐오스럽기만 하지 않고 매력도 있다. 아마존 오지 탐험이나 정글에서 살아남기 같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출연자들은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수십만 마리의 바퀴벌레 속에서 헤엄을 치고 동물의 성기나 꼬리 같은 것을 맛있게 먹는다.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는 방부 처리한 시신들을 모아 그 유명한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회를 연다. 이런 것들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혐오와 매력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극단적인 혐오감은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혐오감을 느끼면 스트레스 반응센터인 시상하부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특정 전달물질과 호르몬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그 양이 많을 경우 이 호르몬은 장기적으로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체내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혐오감이 강하면 도망을 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구역질 나는 악취를 군사적으로 이용해 보자는 전략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모넬 화학 감각 연구소에서 일하는 과학자 파멜라 달튼은 펜타곤 비살상무기 팀의 의뢰를 받고 슈퍼 냄새 폭탄을 개발했다. 모여있는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일종의 무기였다. 달튼은 여러 스페셜 냄새 폭탄들을 실험했는데, 그중 '누구, 나?'는 몇 주일 동안 햇볕 아래에서 썩은 쓰레기 컨테이너 냄새였다. 실험을 위해 수백 명의 실험 참가자들이 그녀의 냄새 방으로 초대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토사물 냄새를 맛있는 치즈 냄새라고 생각했다. 대다수는 불에 탄 사람의 살 냄새를 끔찍하다고 평가했지만, 몇몇은 군침 도는 바비큐 냄새로 착각하기도 했다. 가장 구역질 나고 무시무시한 냄새는 유기물이 분해될 때 나는 악취였다. 실제로 그녀가 군대에 납품한 냄새 폭탄에 그 냄새가 살짝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냄새 무기를 사용했다는 보고는 없다. 아마도 냄새 폭탄이 심리적인 무기인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화학 무기 협약에서 금지하는 화학 무기일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감정: 수치심
혐오감은 보통 부끄러운 신체 분위에서 나온 분비물과 관련된 경우가 많은 반면,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이 개입된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들어가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는데 누군가 모르고 들어오는 경우 매우 당혹스럽고 부끄럽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공개적이 될 때 부끄러워진다. 누군가 보았거나 들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수치심이 유발될 수 있다. 수치심 자체가 격렬한 신체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지극히 보수적인 사회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수치심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뉴질랜드의 누드 비치라고 해서 무질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곳에도 정교한 행동 규칙들이 존재한다. 수치심의 발달은 옷을 입고 사는지 벗고 나체로 사는지와도 별 관련이 없다. 우리는 공존의 불문법을 통해 감정을 규제할 수 있다.
혐오감과 수치심에게도 긍정적인 보호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치심은 우리 신체의 은밀한 분위를 드러내 보이지 않도록 막아주며 타인의 공격에 대비하여 그곳을 보호한다. 분비물과 신체 개방에 대한 혐오감 역시 타인의 은밀한 부위에 함부로 접근하지 않도록 막아준다.